연하산 품은 연못…그 안엔 골퍼들 눈물이 한가득

입력 2023-06-01 18:43   수정 2023-06-02 00:44

골프를 취재하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좋다는 골프장은 거의 다 가보게 된다. 주말마다 열리는 프로대회들이 저마다 ‘명문’이라고 자부하는 특급 골프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문이라고 다 같은 명문은 아니다. 그 사이에서도 따로 등급이 있다.

경기 여주에 있는 해슬리나인브릿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주변 경관부터 코스 상태, 캐디 서비스, 음식 맛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다. 2009년 개장 이후 국내외 주요 골프잡지들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 골프장 리스트의 꼭대기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연하산의 경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더니, 눈앞에 해슬리코스 9번홀(파4) 티잉구역이 들어왔다.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이다. 긴 전장(화이트티 340m, 레드티 280m)에 연하산이 퐁당 들어갈 만큼 큼지막한 연못과 벙커를 양쪽에 품은 모양새다. 한눈에 봐도 만만치 않은 홀이다.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는지, 안명훈 CJ대한통운 리조트부문 대표가 한마디 건넸다. “생각을 많이 하고 공략해야 하는 홀이에요. 섣불리 덤비다가는 스코어 금세 잃습니다.”

“회원 없인 왕족도 못 쳐”
해슬리는 CJ그룹이 만든 두 번째 골프장이다. ‘형’인 제주 클럽나인브릿지처럼 호쾌한 자연과 고급스러운 클럽하우스가 어우러진 고급 골프장의 전형이다.

입지부터 그렇다. 해슬리라는 이름은 이 골프장이 있는 해승리(해가 떠오르는 마을)에서 따왔다.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다는 얘기다. 이 일대가 명당이란 건 주변에 세종대왕릉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주변 지명인 연라(煙羅)리는 ‘연이 떨어진 곳’이란 의미다. 조선시대 때 연을 날려 떨어진 곳에 세종대왕릉을 이장하기로 했는데, 여기 떨어졌다고 한다.

코스 설계는 제주 클럽나인브릿지를 만든 데이비드 데일에게 맡겼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일단 무산됐지만,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규대회인 CJ컵을 열기 위해 중간에 변별력과 난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 자체로 예술작품인 클럽하우스는 세계적인 건축가 반 시게루와 윤경식이 합작했다.

골프업계 사람들은 해슬리를 ‘한국의 오거스타’로 부른다. 마스터스대회를 여는 미국 최고 골프장 오거스타내셔널GC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비슷한 건 회원이 아닌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점이다. 200여 명뿐인 회원과 동반하지 않으면 해슬리의 잔디를 밟을 수 없다.

CJ그룹 관계자는 “최근 한국을 찾은 중동의 한 왕족이 (얼마든 좋으니) 해슬리에서 라운드를 원한다고 연락이 왔었다”며 “하지만 ‘회원과 동반하지 않으면 올 수 없다’는 엄격한 해슬리의 부킹 원칙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잔디는 값비싼 벤트그라스를 깔았다. 그린은 물론 티잉구역과 페어웨이 모두 벤트그라스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모든 홀 바닥에 공기 통풍 장치 서브에어와 온도 조절 장치 하이드로닉스를 설치했다. 오거스타내셔널GC에도 적용된 시스템이다. 그린 밑의 유해가스를 제거하고 온도를 관리해 잔디가 한국의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돕는다. 그 덕분에 해슬리의 티잉구역과 그린은 한겨울에도 보송보송하다.
골퍼들의 눈물로 만든 연못
드라이버를 잡았다. 손바닥만 한 페어웨이에서 벗어나면 왼쪽 연못 아니면 오른쪽 벙커 앞에 떨어진다. 연못은 처음 설계할 때는 가로로 긴 형태였다. 코스를 정비하면서 티잉구역 쪽으로 크게 확장해 아랫배가 두툼하고 가늘게 꼬리를 뺀 듯한 지금의 모양이 됐다. 그렇게 코스 난도를 끌어올렸다. 해저드가 있는 왼쪽보다는 벙커가 있는 오른쪽이 두 번째 샷을 치기에 시각적으로 부담이 적다. 다만 홀이 왼쪽에 있는 탓에 오른쪽으로 가면 두 번째 샷 거리가 길어진다.

“땅~” 손맛이 괜찮았다. 150m를 날아간 공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떨어졌다. 핀까지는 120m. 5번 우드로 충분히 올릴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선뜻 손이 안 갔다. 그린이 러프 구역 없이 곧바로 연못과 닿아 있어서다. 정확한 거리와 높은 탄도, 적당한 스핀이 없으면 연못에 빠질 게 뻔한 상황이다.

6번 아이언을 잡았다. 목표는 그린 앞 페어웨이에 공을 떨구는 것. 하지만 왼쪽 연못이 마음에 걸려 핀보다 오른쪽을 겨냥했는데, 공은 훨씬 더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52도 웨지를 들고 그린 오른쪽 러프에 빠진 공으로 향했다. 핀은 연못 쪽에 꽂혀 있었다. 핀 10m 앞에 떨어뜨려 깃대 근처에서 멈추기를 기대했지만 3.2m(스팀프미터 기준) 스피드의 그린에 오른 공은 멈출 줄 몰랐다.

물에 안 빠뜨리려고 첫 번째 샷과 두 번째 샷을 그렇게 신경 썼는데, 생각지도 않은 세 번째 샷이 빠졌다. 1벌타를 받고 드롭 후 온 그린, 그리고 투 퍼트. 트리플보기였다. 그린을 빠져나오는데 연못 안에 개구리알처럼 가득 모여있는 골프공이 보였다. 앞서 다녀간 골퍼들이 흘린 ‘눈물방울’이다.

95개의 벙커는 폭신한 잔디에 이은 해슬리의 또 다른 명물이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인증한 기관에 의뢰해 모래 입자 크기, 성분 등을 검사한 뒤 기준을 통과하는 모래만 들여온다. 모래가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럽다. 그렇다고 아마추어 골퍼들이 반길 일만은 아니다. 한번 들어온 공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벙커에 들어가면 최소 1타는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해슬리는 18홀이 모두 시그니처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홀마다 나름의 멋이 있다. 그렇게 각각 홀의 서로 다른 매력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18번 홀이다. 자작나무숲 사이에서 플레이하는 해슬리코스 4번홀과 그늘집에서 바라보는 PGA코스 5번홀의 풍광 및 코스 구성은 해슬리코스 9번홀 못지않다.

넉넉한 티오프 간격(10분) 덕분에 앞 팀과 뒤 팀을 만날 일이 없다. 주중 30팀, 주말에는 50팀 안팎만 운영한다.

여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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